묻고 또 물어야 할 질문
“장시간 노동이 왜 당연합니까?”
전작 《과로 사회》로 주목받은 사회학자 김영선이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를 들고 돌아왔다. 주 52시간 근무 시대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장시간 노동’에 묶어 놓는 사회문화적 구조와 이러한 예속 상태의 해체 방안을 탐색하는 책이다. 특히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대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데 집중했다.
‘장시간 노동 근절’ 선언 아래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됐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일과 삶이 실제로 균형을 맞추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가 높다.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에서 저자는 현대인의 '시간 빈곤‘이 제도 개선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개개인의 시간권리가 온전히 내 것으로 누려지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추천의 글
프롤로그 / 행복하기 위해 행복 없이 산다
1장 | 시간의 결
쉼 없는 사회
사회 없는 시간
시간의 구조가 삶의 결을 바꾼다
2장 | 시간기근 사회의 질병: 시간마름병
죽음의 행렬
크런치 모드: 개발자들의 돌연사
‘존버’하는 삶
관계 단절의 악순환
소극적 여가, 상품집약적 여가
폭력의 재생산
SNS를 타고 일상으로 침투하는 업무들
3장 | 우리는 왜 시간기근에 허덕이는가?
두세 사람의 몫을 혼자 짊어지는 구조
지금도 미화되는 근면 신화
더 열악해진 임금 구조
시늉만 하는 규제
우리의 불안을 파고드는 성과 장치
상품서비스의 늪
‘플랫폼 노동’이라는 위험 징후
4장 | 시간의 민주화: 시간 예속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여유로워야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상한선을 명확히 하기
새로운 언어의 발명
지금의 임금체계는 온당한가
제도 개혁
소비주의와 거리 두기
성과 장치의 반인권성에 대하여
기술에 사회적으로 개입하기
에필로그 / 다시 그때로 돌아가진 않는다
참고문헌
‘장시간 노동’에 사로잡힌 나라
대통령이 말했다. “OECD 평균보다 연간 300시간 더 일해야 먹고살 수 있다는 부끄러운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장시간 노동 관행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주 52시간 상한제를 도입했다. ‘워라밸’ 문화 정착에 나선 한국을 보고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렇게 말했다. “52시간? 그것도 길다. 한국도 선진국 아니었나?”
최근 과로사와 과로자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사회학자 김영선의 평가는 더 냉혹하다. “장시간 노동에 예속된 상태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자각조차 못하고 있다.” ‘시간 박탈’ 상황이 점차 악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 김영선은 이를 하나의 사회적 질병으로 간주한다.
‘시간마름병’이라는 질병
김영선은 과로가 유발하는 신체적, 정신적, 관계적, 사회적 질병을 ‘시간마름병’이라고 진단한다. 여기에는 우울증과 과로사, 관계 단절 등이 포함된다. 과로사회에 발을 딛고 있는 우리는 모두 ‘시간마름병’ 환자다. 시간마름병은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사회 모든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한다.
이 상황을 더욱 악화하는 요소는 자본의 신기술이다. SNS로 업무 지시가 내려오고, 시공간에 묶여 있지 않은 노동자(플랫폼 노동)는 언제든 호출된다. 업무의 일상 침투가 이처럼 만연할 때 더 크게 위협을 받는 대상은 비정규직, 여성, 이주민 등의 취약 노동자들이다. 장시간 노동의 성질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할 순간이다.
제도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근면 신화는 스스로 진단하고 알아서 책임지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저임금 구조, 성과 장치가 여기에 한몫을 한다. “내가 일하겠다는데 왜 국가가 나서서 막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임금이 줄고 외주화가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도 우리는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과로 사회 탈출’에는 공감하지만 ‘저녁 굶는 삶’에 대한 불안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불안과 스트레스는 다시 일을 부른다. 실제로 과로자살의 빈도는 증가 추세다. 일이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과로자살은 신자유주의적 과로사의 형태다. 근로기준법 준수 수준의 노동시간 단축으로는 끊을 수 없는 굴레다.
보이지 않는 ‘교육’의 힘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주의는 힘이 세다. 개인의 의지와 의식 전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대부분 스스로 시간권리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시간의 민주화’ 과정이 필요하다. ‘알바도 유급휴가 가자’는 슬로건을 만들고 ‘경단녀’라는 젠더 차별적 언어에 반기를 드는, 이른바 ‘대항 담론’ 만들기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제도 차원의 개선은 개인이 자유시간을 포기하는 지점에서 힘없이 무너진다. 나의 시간권리를 자연스럽게 여기고, 주어진 시간을 주체적으로 누릴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려면 교육이 필수다. 다른 삶,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지향하는 일종의 문화 교육이다. 교육은 두려움을 걷어낼 용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장시간 노동으로의 회귀를 막는다.
엄격하고 과감한 개혁
궁극적으로 ‘저녁 있는 삶’은 의식과 제도가 맞물렸을 때 구현될 수 있다. 저자는 정부가 장시간 노동에 단호히 메스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제 일자리’나 ‘금요일 조기퇴근제’ 같은 미봉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뭔가 바뀔 거라는 기대가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이전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
저자는 세부 상한선이 엄격한 시간 규제, 초과 노동에 대한 페널티 등을 제안한다. 개선 의지에 진정성을 담으려면 포괄임금제, 제외된 특례업종처럼 장시간 노동을 방조하는 관행의 과감한 폐지도 요구된다. ‘장시간 노동’이라는 폭력은 시대에 따라 형태를 바꾼다. 이에 맞서려면 인식과 대안 또한 구체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추천글
‘과로사’의 원조 격인 일본에서 과로사방지학회가 열렸다. 중국에서 온 학자가 공개 질의했다. “일본은 선진국인데도 왜 과로사 문제가 아직도 심각한가?” 한국에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김영선 박사의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답변”(CVIA)을 제시한다.
- 강수돌(고려대 교수, 《여유롭게 살 권리》 저자)
이 책은 ‘일에 치인’ 우리 모두가 사회경제적으로 공모해 하나의 체제로 형성하고 공고화해온 우리 시대 장시간 노동을 탁월하게 그려낸 서사 보고서다. 체념과 함께 오랫동안 은폐되어 온 ‘시간기근 상처’의 풍경이 이처럼 호소력 있게 드러난 글은 흔치 않다.
- 조계완(한겨레신문 기자, 《우리 시대 노동의 생애》 저자)
김영선 박사는 장시간 노동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가 ‘좀 더 견딜 만한 착취’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권리를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비주의와 거리 두기, 일에서 성과 장치를 걷어내기 등의 대안에서 이 책은 차별성을 갖는다.
- 김형렬(가톨릭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교실 교수)
‘일과 생활의 균형’ ‘노동시간 단축’은 계속해서 화두다. 지금 딱 필요한 책이다. 노동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판례, 국내외 연구 서적과 사례가 총망라되어 있다.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야근과 휴일 노동에 지친 가족, 친구, 선후배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정병욱(과로사예방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