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도서는 곤충의 진화를 다룬 교양 만화이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생물학과 곤충의 세계를 작가 특유의 드립력으로 소개하고 있고 읽기에 부담없는 만화로 구성되어 있어 곤충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처음엔 몰랐는데 과거에 디시인사이드 곤충 갤러리, 네이버 포스트
등에 연재된 과학 웹툰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교양툰 시리즈 중 하나이다. 교양툰 시리즈는 일전에 블로그를 통해서 잠깐 소개한 바 있는데 양자역학조차 알기 쉽게 설명할 정도로 방대한 지식을 부담없이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점과 만화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참고로 교양툰 시리즈의 다른 책 리뷰를 확인하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기 바란다.
곤충의 진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곤충이 탄생한 순간부터 현재까지 진화의 과정
을 담고 있으며 곤충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
인 외골격, 날개, 사회성, 유전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불어 개미, 바퀴벌레, 모기와 같은 대표 곤충
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책이 가지는 또 다른 장점 중의 하나는 곤충만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곤충과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는 다른 생물들인 균, 식물, 곤충 외 절지동물
들도 다루며 지구의 탄생 과정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10 ~ 11화에 해당하는 진화론 파트에서는 번쩍이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음은 물론, 생물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엿 볼 기회가 있어 폭넓은 과학 상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저자는 어린시절 과학자와 만화가를 동시에 꿈꾸던 현 곤충학자
로 곤충학자가 갖고 있는 전문성을 또 하나의 꿈인 만화가의 능력으로 풀어냈다. 그렇기에 책의 내용이 제법 난이도 있고 알찬 지식으로 가득찼음에도 보통 만화책 읽듯 쉽게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저자에게는 아주 독특하고 보기 드문 유머 감각(?)
이 있다. 김성모 만화부터, “내가 고자라니”로 유명한 짤 등 인터넷에서 누구나 봤을 법한 재밌는 소재들이 중간 중간 튀어나와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렇기에 성인은 물론 특히 학생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12 ~ 15화는 곤충의 성생활을 다루고 있기에 너무 어린 자녀가 보기엔 약간 곤란할 수도 있다.
다루는 소재도 온갖 신기한 것들 투성이다. 예를 들면 개미의 수컷 염색체에 관한 내용을 들 수 있다. 개미 수컷이 X 염색체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게다가 개미는 암컷 혼자서 알을 낳을 수 있다. 수컷과 수정을 통해 알을 낳으면 XX 염색체의 암컷이 나오고, 암컷 혼자서 낳으면 X 염색체 하나인 수컷을 낳는다
.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런 염색체의 특수성 때문인지 50%의 유전자가 전달되는 자식보다 75%의 유전자가 전달되는 여왕개미의 산란이 염색체 관점에서는 더욱 유리하다. 그렇기에 일개미들은 알을 낳지 않고 여왕개미만이 산란을 담당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신기한 소재들을 읽어나가다보면 교양이 풍부해지고 재미있음은 물론 사람과 비교하며 그동안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낯설게 보이며
많은 부분에서 영감을 준다는 점 또한 책의 백미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진화 및 진화론
을 다룬 부분이다. AI를 연구하면서 그동안 진화와 관련있는 인공지능은 유전학습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진화론에서 나온 AI의 아이디어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또 기초 과학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고 더불어 자라나는 우리 세대 아이들이 이런 책을 통해 호기심을 얻고 기초 과학에서 옥석을 가려 응용분야에 접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인지 AI 분야로 예로 들어보겠다. 사람이 과학이나 수학의 법칙을 만드는데 있어 가장 큰 지식과 인사이트는 자연에서 얻고 있음을 모두 알 것이다. 자연 속에 숨어 있던 늘 당연했던 패턴에 의구심을 품고 중력을 발견하거나 미적분을 발명했듯이 말이다. 이처럼 사람이 자연의 패턴을 분석하고 배우는 관점은 AI 모델링 혹은 지도 학습과 유사한 면이 많다.
더불어 유전학습은 아까 언급했으니 건너뛰더라도 알파고를 만들 수 있었던 핵심 기법 강화학습
에 대한 아이디어도 진화론과 유사하다. 강화학습은 크게 환경, 에이전트, 액션으로 이루어지는데 진화론에서도 마찬가지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개체가 살아남아 진화가 됨을 설명하고 있다. 강화학습은 생존대신 보상을 많이 받고자 하는 매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우 흡사하다. 역시 AI를 만드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창조주가 자연을 만드는 과정을 모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저 놀라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 책을 읽으며 샘솟은 아이디어는 사실 따로 있다. AI는 지도학습을 통해 발전하는데 생명체와 달리 영생한다. 전기가 차단되지 않는 한 말이다. 생물은 죽음이라는 유한 메타 덕분에 진화에 성공하게 된다. 환경에 경쟁력이 없는 것들이 죽어나가면서 변이된 종들이 살아남아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에 죽음
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며 많은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었다.
또 한가지의 흥미로운 생각은 성(性)과 번식에 있다. 인간의 성은 염섹체의 결합과정으로 다양성을 가진다. 하지만 AI에는 성이 없다. 그렇다면 성
을 이용하면 다양성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번쩍이는 생각들로 지적 유희를 한바탕 신나게 즐길 수 있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을 수도 없었다. 아이가 와서 놀아달라고 보채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상과 쇼파에서 항상 이 책을 들고 정신없이 읽었다. 읽어보면 알 것이다. 쉽사리 손 뗄 수 없음을.. 그런 의미에서 자라나는 청소년과 곤충 및 과학에 관심이 많은 성인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