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명성 있는 인사를 만나, 그들을 독(讀)선생으로 모시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런 데다가 이 일은 유명 인사의 후광에 힘입어 내 이름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거기에 따라오는 원고료는 개인 수업과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막대한 부가가치에 비교하자면, 오히려 하찮은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가 되고 문청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몇 차례나 인터뷰 연재를 맡은 적이 있다. 1990년대 초반에 『문학정신』에서 작가들을 만났고, 1990년대 말 <문화일보>에서 여러 분야의 저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두 번 다, 10회도 채우기 전부터 인터뷰어 노릇은 ‘때려죽여도 하기 싫은 일’이 되었고, 내가 자진해서 연재를 중단했다. 모든 것은 삼세번이던가? 2000년대 말, <중앙SUNDAY>의 요청으로 인터뷰어 노릇을 한 번 더 했고, 그것을 간신히 마친 후 <중앙일보>에서 온 똑같은 제의를 물리쳤다. 남은 평생 동안, 이런 일과는 영영 이별이다.
세 번 다, 인터뷰이를 선정하는 일은 전적으로 나에게 맡겨졌다. 그런데도 인터뷰가 고역인 것은 이 일이 글쓰기의 3D 직종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해 온 창작은 극히 개인적인 일이었던 데 반해, 인터뷰는 상대의 말을 듣는 기술이다. 창의적인 일이라고 내세우기 꽤 애매한 이 일은, 글을 정리하면서 인터뷰이의 눈치도 봐야 하고, 자칫하면 욕까지 얻어먹어야 하는위험한 일이다. 인터뷰어가 이 일을 싫증 내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 조건은,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보다 덜 유명하고 나이도 어릴 때이다. 그러니 청소년 시절의 옷을 도로 입으려는 어른처럼, 언제부터인가 인터뷰는 내 일이 아니었다.
세 번째 연재를 시작하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정하는 내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첫째, 인터뷰이의 남녀 성비를 정확하게 반반으로 맞춘다. 둘째, 가능한 많은 극작가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셋째, 외국인 저자를 놓치지 않고 만난다. 그러나 마흔세명의 인터뷰이와 만났던 이 책을 보면, 내 원칙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 가운데 첫 번째 원칙은 가장 지키기 쉬운 것으로 보였는데, 막상 남녀 성비를 반반씩 맞추고자 여성 저자를 찾아보니 쉽지가 않았다. 간섭한 사람이 없는데도,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니 모두 내 책임이다.
여기 실린 마흔세 명의 저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협소한 문학(소설, 시)으로 온전히 포획되지 않는 또 다른 문학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교양의 세계는 ‘세계문학전집’보다 드넓고, 글쓰기의 종류 역시 협소한 문학의 가짓수보다 많다. 이 대담집에 실린 작가와 그들의 저작이 독자들에게 교양과 글쓰기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보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가며, 설명과 답변을 아끼지 않았던 저자들에게 감사한다.
- <장정일, 작가: 43인의 나를 만나다> 中 굿바이 인터뷰 에서
최신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