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에서 국가, 민간에서 모셨던 신을 다룬 책으로 단순히 종교 개념을 넘어서 조상들의 교육, 사상, 문화와의 정서적 유대를 되새겨 볼 수 있게 해주는 명작이다.
불교는 부처님, 가톨릭은 삼위일체 주님, 개신교는 예수님, 이슬람교는 알라신… 다양한 종교마다 우리는 대표하는 유일신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유교는 어느 신을 모실까? 공자? 조금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은 어떤 신을 모셨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무수히 많은 신이다. 대표적으로 공자를 말하곤 하지만 그는 유교의 창시자로써 상징적의 가치를 지닐 뿐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 절대자의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국토의 신 국사, 곡식의 신 국직, 토지의 신 후토, 오곡의 신 후직, 역대 제왕들을 모신 종묘, 조선의 사대고조, 공신들을 모신 공신당, 농사의 신 신농, 양잠의 신 서릉, 날씨의 신 풍운뇌우, 우사단의 여섯 신, 문묘의 18현, 단군왕검, 기자, 각 국의 시조묘, 동묘의 관우, 영성과 노인성, 마신, 무사귀신을 위한 여제에 이르기까지 본 도서에서 다루는 신들만 해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왜 이리 많은 신을 모실까? 그리고 이런 관습이 오늘날 우리에게 왜 중요하고 어떤 의미를 지닐까?
역사가 발전할 수록 종교는 유일신의 형태로 발전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및 동북아시아 문화권은 미개하기 짝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세상 이치에 음, 양이 존재하지 않는 일이 없다. 서양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신을 중심으로 강력한 사상적, 절대적 구심점을 모을 수 있었지만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 악용되며 수차례의 종교 개혁을 거치기도 했고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에서와 같이 사람을 신과 분리하거나 재평가 하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특히 신과 인간은 철저히 분리된 존재이며 과학이나 문화 또한 철저히 분리된 존재였다.
반면 이 책에서 다루는 우리나라나 유교 문화권의 국가에서 신은 언제 어느곳에서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그들과 정신적 유대관계와 친밀성을 갖는 표상
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책의 마지막 즈음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아플때마다 할머니가 무당집에서 기도를 올리는 의미를 이제는 알 것도 같다는 말을 했다.
무당집에가서 소원을 관철시키고자 함은 종교적 관점 혹은 과학적 관점에서보면 의미없는 미신일 뿐이지만 그 시절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종교를 넘어선 일상이자 문화
였으니 프레임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일 뿐 폄하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최근 증조부님이 물려주신 땅의 소유권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 골치를 썩는 일이 있었다. 아직도 해결중이지만 그 과정에서 남 모를 따뜻함을 느끼고 정서적 유대를 느끼기도 했다.
소유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상속 지분 때문에 제적 등본을 찾아보며 가족들간에도 구전되지 않은채 일찍 돌아가신 조상님을 알게되며 슬프기도 했고 먼 조상님이라고 생각했던 분의 자손들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또, 토지대장이나 구 등기부 등본을 떼어 보며 조상님들이 땅을 지키기 위해 일제시절부터 고군 분투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며 어려운 한자와 일본어를 해석해가며 대략적으로나마 그 옛날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상상을 하니 뵙지 못한 분들이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느낌이 유교 문화권에서 살아온 후천적 유대감인지 사람 본성에 선천적으로 이어져 오는 각인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구구절절이 개인사를 떠드는 이유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가 어떤 의미인지를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위에서 수 많은 신들을 열거했듯 우리 선조들의 일상에는 항상 신이 있었다. 눈, 비, 바람도 과학이나 기후가 아닌 신이라는 매개체
를 통해 소통하려 한다.
단군왕검은 물론 한민족 각 국가의 시조들을 모두 포용한다. 쿠데타라는 국가 정통성에 흠집이 생길 수 있음에도 이전 국가에 대한 배려와 존중, 포용
이 있었다. 아래 그림처럼 한민족 각 국가의 시조들을 모신 사당들이 그 증거이다.
농사나 곡식과 관련된 신들도 모신다. 비단을 생산하기 위한 누에의 신도 모시고 집이나 마을을 지키는 신도 모시며 마을을 벗어난 산과 강의 신도 모신다. 과거부터 의식주는 가장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던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에는 모두 신을 부여하고 소통
하고자 했다.
따뜻하다.
이러한 본질을 알고나니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원론
이 무슨 의미인지 대강은 알 것도 같다. 이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과 어떻게든 연결하여 내 마음과 소통을 나누고 안녕을 꿈꿨던 조상들의 간절함과 왠지 모를 귀여움까지 느껴진다.
세상에 배척할 것이 없고 모든 것과 유대감을 맺어가고 심지어 그 속에서 충이나 효와 같은 예절
을 배우고 교육을 하며 제사를 올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숭고함과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을 배척하지 않고 자연과 항상 융화되며 자연에 인격을 부여하고 존중해 온 셈이다. 오죽하면 생계에 중요한 수단이었던 말의 신까지 모셨을까?
한가지 더 우리 민족의 자주사상
과 관련된 부분도 이 책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관전포인트이다.
대한제국 즉, 황제국이 되고나서야 사직단에서 모시는 국사, 국직의 칭호를 태사, 태직으로 승격하여 모실 수 있었고 원구단에서 제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당나라의 예법이 이어져 온 이래 황제와 제후는 모실 수 있는 신의 종류에 제한이 있었음은 어느 종교이든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고 악용하느냐에 따라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음을 뜻한다.
씁쓸한 일이지만 어쨌든 당시 대한제국의 건국과 더불어 상당부분 자주성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역사교과서에서 만난 것 이상으로 민중들에게 큰 의미를 지녔던 일이 아닐까 싶어 기쁜 마음이다.
스토리 중심으로 본 도서의 리뷰를 작성했지만 간간히 소개된 그림 처럼 이 책은 만화
로 그려져 있어 매우 이해하기 쉽고 재미의 요소도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단순히 신과 종교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닌 각국의 건국신화, 문화, 시대적 배경이 같이 소개되어 있어 재미있는 관점으로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 유교와 우리 문화권에서의 신은 모든 곳에 각기 존재하기 때문이다.
괜히 네이버 베스트 도전만화에서 최고 별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딱딱하고 그 안에 숨은 진정한 의미를 역사 교과서를 통해 익히기란 시간도 부족하고 집중력도 떨어지는 법이다.
본 도서는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혹은 학생들에게 큰 가치를 지닌 책이다. 역사에 숨은 오묘한 뜻과 깊이를 누수없이 전달하면서도 쉽고 재미있다는 책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