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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라이프

임진왜란 첫 해전, 사거리에서 승리의 해법을 찾다(上)

리얼타임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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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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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19,743

1592년 임진년壬辰年, 일본은 오래 내전을 통해 전국을 통일했으나 국내 정치의 불안과 권력 유지를 위해 명明나라를 치기로 결정했다. 일본 조정은 쓰시마(対馬, 한반도와 규슈 사이의 대한해협 중간에 있는 일본 나가사키현의 섬) 도주를 통해서 조선에게 길을 빌려 달라는 요청을 했다. 조선은 이를 거부했고, 일본은 이를 빌미로 조선 침공을 위한 깃발을 올렸다. 그들은 이미 바다를 건널 배와 20만 명의 군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당파 싸움에 혈안이 되어 일본의 이런 분위기를 알면서도 눈을 감고 있었다. 

 

그해 5월 23일 새벽, 일본은 부산포를 시작으로 경상도를 거쳐 수도인 한양까지 손쉽게 진격했다. 임금인 선조는 조정 대신을 이끌고 몽진(蒙塵, 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안전한 곳으로 가는 일)을 했다. 한양은 비었고 적은 손쉽게 그곳을 점령했다. 전국 곳곳에서 봉기한 의병과, 정렬을 재정비한 관병들이 적을 막았으나 무너진 조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쟁에 있어 승리를 위한 진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물자와 식량의 공급이다. 일본은 식량 공급을 위해 곡창 지대인 여수, 순천 등 전라도 지역 점령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순신 장군(李舜臣, 1545년~1598년, 조선 중기의 무신, 시호는 충무忠武)이 있었다. 그들은 몰랐다.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온 조선의 장군이 있음을.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년 5월~1598년 12월)과 정유재난(丁酉再亂, 1597년~1598년)의 기간 동안 굳건히 남쪽 바다를 지켰다.

 

 

일본과의 첫 전투, 해법은 어디서?

 

“장군, 신호가 올라왔습니다.” 녹도만호(鹿島萬戶, 종4품) 정운(鄭運, 1543년~1592년)이 조용한 목소리로 이순신에게 보고했다. “좋다. 이제야 왜군을 소탕할 때가 되었구나.” 이순신은 날아오른 신호를 보고 있었다. 적을 발견한 사도첨사(蛇渡僉使, 종3품) 김완(金浣, 1546년~1607년)이 쏘아 올린 신기전(神機箭, 1448년 제작된 로켓 추진 화살)이었다. 

 

“제군들! 지금부터는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 태산과 같이 무겁고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 이순신은 짧지만 강한 어조로 군령을 내렸다. 1592년 음력 5월 7일(양력 6월 16일) 정오 무렵, 조선 수군은 대형 전투 선인 판옥선板屋船 24척과 중형 전투선인 협선(挾船, 대형 전투함의 부속선으로 활용된 소형배) 15척, 그리고 소형 어선인 포작선(匏作船, 바다에서 해물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타는 배) 46척을 이끌고 옥포만玉浦灣으로 향했다. 

 

“장군, 포구에 정박 중인 왜선이 보입니다. 명을 내려 주십시오!” 멀리 보이는 왜선은 조선 수군의 긴장감을 점차 올려놓고 있었다. 참모들은 왜군과 일전을 위한 명령을 기다렸다. 그들은 이날을 기다리며 모진 훈련을 참아왔다. 조선을 노략질한 왜군에게 그들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참모들은 이순신의 명을 받기 위해 주위로 모였다.“기다려라. 우리에게는 포가 있다. 적들은 조총으로 덤빌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사거리가 다르다.” 참모들은 장군이 이야기한 ‘사거리가 다르다’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의심하지는 않았다. 이순신은 포구 안쪽에 정박 중인 왜군의 지휘선으로 눈길을 돌렸다. 조선해군을 발견한 왜군은 급히 전투선에 올라타고 있었고, 지휘관인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가 작전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가오는 조선 수군을 감싸기 위해 동서로 포위망을 형성하며 포구를 출발했다. 

 

“장군! 저들이 배를 돌려 이쪽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참모가 전장 상황을 이순신에게 알렸다. “그들의 조총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참모는 걱정이 되었다. 일본 전투선은 조선의 판옥선보다 날렵하여 금방 눈앞까지 당도할 기세였다. 그들이 쏘는 조종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그 소리에 아군 일부 병사는 겁을 먹은 듯 보였다. “이운용(李雲龍, 1562년~1610년), 지금부터 네가 선봉이다. 모든 화포를 왜선에게 집중시켜라. 적에게는 포가 없다. 걱정할 필요 없다. 적에게는 조총뿐이다. 조총 사거리는 우리 포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소리에 겁먹지 마라. 자! 가서 화포로 승부를 걸어라.” 이순신은 확신에 찬 어조로 이운용에게 선봉장 임무를 맡겼다. 이운용은 함선을 이끌고 왜선으로 나아갔다. 왜선들은 더 맹렬히 조총을 쏘며 이운용의 함대로 다가왔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탄환은 날아오지 않았다. 탄환은 함선 앞 먼 곳에 떨어질 뿐이었다. 이순신의 말대로 사거리가 짧았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천자총통(天字銃筒, 조선시대 대형 총통 중에서 가장 큰 총통)을 쏴라.” “우현,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내부에 화약과 철조각이 장전된 폭탄)를 넣고 쏴라.” “좌현, 차대전(次大箭, 총통을 이용해 날리는 창살)을 장착하고 쏴라.” “이때다. 대장군전(大將軍箭, 천자총통 전용 미사일형 화살)을 넣어라. 쏴라!” 화포장은 심지에 불을 붙였다. ‘꽝’하는 소리와 함께 3m 길이의 대장군전이 하늘로 솟구쳤다. 1,200보를 날아가는 대장군전은 왜선을 강타하여 커다란 구멍을 냈다. 수류탄과 비슷한 ‘비격진천뢰’는 적의 배 가까이에서 터지며 왜군을 아비규환으로 몰고 갔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에 왜군은 혼란에 휩싸였다. 연이어 날아드는 포탄은 배에 구멍을 냈다. 왜군은 혼란에 빠졌다. 아무리 조총을 쏘아도 소용이 없었다. 조선 함선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왜군은 조총을 버리기 시작했다. 아무 쓸모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달아났다. 연전연승에 취해 있던 왜군은 조선 해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전 함대는 왜선을 향해 포를 쏴라.” 격군(格軍, 노잡이)은 배의 속도를 유지하느라 바빴고, 화포장은 총통에 화약을 재고 쏘느라 더욱 바빠졌다. 옥포 앞바다에는 어느덧 부서진 왜선과 적군의 시체가 넘실거렸다. 왜선 50척 중 26척이 완전히 격침되었다. 일부 배는 전투의 와중에 지휘관을 태워 몰래 빠져나갔고, 배로 빠져나가지 못한 왜군은 육지로 달아났다. 조선 육군의 연일 계속되는 패전 소식 속에 이순신 장군의 승리는 아군에게 단비와 같았다. 조선 해군은 물러나는 왜군을 보며 하늘 높이 만세를 불렀다. 이순신 장군은 승리의 기쁨에 들뜬 병사들을 보았다. 그들의 환호성과 외침은 오랜만이었다. 참모는 아군의 피해가 부상자 한 명뿐이라는 전과를 보고했다. 놀라운 승리였다. 적을 완전히 박살내고도 아군의 피해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숙영지로 돌아가는 길에 참모는 궁금했다.

 

“장군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아라.” 

“적을 화포만으로 제압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과 나의 상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나는 이미 적의 무기와 아군의 무기, 적의 환경과 우리의 환경, 적의 장점과 아군의 장점을 서로 비교하고 분석해 두었다. 왜선은 전투를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빠른 이동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왜 그랬을까? 일본은 자국의 문제를 조선 침략으로 해결하려고 했었다. 일본의 내란 과정에서 군인이 많이 양성되었는데, 대부분 수군이 아닌 육군이었지. 일본 입장에서는 그 군인을 조선에 빨리 보내서 영토를 취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해전을 염두에 두지 않고 배를 만들었어. 배를 높고 가볍게 만든 것도 군인들을 조선에 빨리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주무기가 조총인 것도 그래서다. 조총의 사거리가 100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반면 우리의 판옥선은 왜선에 비해 크고 높이가 높지. 배끼리의 전투를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기 때문이야. 게다가 우리의 주 무기는 화포다. 화포는 포신인 총통에 무엇을 장착하느냐에 따라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제작된 대포야. 길고 무거운 창살 같은 대장군전은 1,000보를 날아가네. 그 무게와 속도로 적의 함선을 뚫어 버리는 거지. 구멍 뚫린 배는 점점 가라앉거든. 그 상황이면 적은 혼란에 빠지게 되지. 그때 근접전을 펼치며 화살을 퍼붓는 것이다. 화살은 150보를 가거든. 저들의 무기보다 우리의 무기가 더 멀리 나가는 것이지. 결국 우리는 이겨 놓은 전투를 확인하기 위해 여기로 온 것이라네.” 

 

이순신은 참모의 질문에 긴 대답을 하고서는,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참모에게 한마디를 더 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해. 적들의 끝은 더 참혹할 것이야. 시작은 그들이 했을지 몰라도 끝내는 것은 내가 결정할 것이라네.” 이순신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고는 노를 젓는 격군이 있는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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