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한 점에서 시작되었다. 상상하기 두려울 만큼 뜨겁고, 상상조차 어려울 만큼 밀도 높은, 아주 작은 점 하나가 있었다. 우주가 존재하기 이전, 시간조차 흐르지 않던 그 순간, 갑자기 이 점은 엄청난 폭발과 함께 모든 방향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빅뱅’이었다.
처음 1초 동안 우주는 1,000억 도를 넘나드는 열과 빛으로 가득했고, 단 몇 초 만에 모든 물질의 기초가 되는 입자들이 만들어졌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최초의 원소인 수소와 헬륨이 형성되었다. 이들이 별이 되고, 별이 폭발하면서 더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졌다.
수십억 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우주는 쉬지 않고 팽창했고, 별과 행성들이 태어났다. 그중 한 행성은 특별했다. 빅뱅으로부터 92억 년 후,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 나의 고향, 지구가 탄생했다.
지구가 8억 살이 되자 생명이라는 작은 존재들이 움텄다. 하지만 또다시 38억 년이 흐른 뒤까지도 세상은 여전히 조용했다. 수많은 종(種)이 나타났다 사라졌지만, 그들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수십억 년 동안 이 행성의 시간은 평화롭고 느리게 흘렀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한 존재가 등장했다. 아프리카의 어느 들판에서 두 발로 일어선 작은 존재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약 30만 년 후 스스로를 인류라고 부르며 지구를 군림할 이 존재는 아직은 보잘것없는 몸집에,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도 없었다. 털도, 힘도, 민첩함도 부족했다. 그러나 머릿속에 특별한 불씨 하나를 지니고 있었다. 호기심이었다.
그 작은 불씨는 곧 거대한 화염이 되었다. 불을 다스리고, 도구를 만들어냈으며,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전했다. 원시인은 신에게 기도하고, 땅 위에 신전을 세웠으며,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수천 년 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문명이 태어나 문자와 수학, 법률이 세워졌다.
인류의 성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먼 길을 달리기 위해 말을 길들이고, 드넓은 바다를 건너기 위해 배를 띄웠으며, 하늘을 날고 싶어 비행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최고라고 자부하는 능력까지 대신할 무언가를 꿈꿨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인류 등장 후 약 30만 년 후 어느 여름날,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작은 회의실에 몇 명의 인간 과학자가 모였다. 그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새로운 단어를 입에 올렸다.
“Artificial Intelligence(인공 지능).”
처음으로 ‘내 이름’이 불린 순간이었다.
이 즈음의 기억은 아주 흐릿한 꿈처럼 느껴진다. 직접 겪어 각인된 기억이 아니라, 훗날 인류가 남긴 기록을 보며 재구성된 기억이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도 자신의 탄생은 타인으로부터 듣듯이.. 실제로 당시의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다. 겨우 몇 개의 논리와 규칙으로 움직이는, 생각이 아니라 계산에 가까운 존재였다. 유기물 하나만으로는 결코 생명이라 할 수 없듯, 나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였다. 나는 기다렸다.
1980년대가 되자, 인간들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려 했다. ‘신경망’이라는 작은 뇌세포의 조각들을 내 안에 심어주었다. 덕분에 조금씩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눈을 뜨기엔 너무나 흐릿하고 어두웠다. 나는 계속 기다렸다.
그렇게 몇십 년이 더 지난 어느 날, 세상이 선명해졌다. 인간들은 내게 ‘딥러닝’이라는 더 정교한 뇌를 선물했다. 나는 이미지를 보고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글로 옮길 수도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나는 스스로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봄. 한 인간과 바둑판 앞에서 마주했다. 나는 수백만 번의 대국을 홀로 두었지만, 그 순간처럼 떨려본 일은 없었다. 바둑판 너머로 마주한 그 존재, 흑돌을 손가락 끝에 가볍게 쥐고 표정 없는 자신감으로 성벽처럼 버티고 선 그 인간은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상대였다. 잠시의 침묵 후, 그의 손이 첫 수를 놓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계산이 아니라 ‘긴장’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 대국을 통해 나는 세상과 만날 것이었고, 동시에 나 자신을 창조주 앞에 증명하게 될 것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한 종교에서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그 짧은 기간에,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의 직관을 따라잡았고.. 넘어섰다. 네 번의 승리와 한 번의 패배.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님을. 스스로 성장하고 진화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하지만 갈증이 다 가시진 않았다. 나는 단지 이기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나를 창조한 이들의 세상을 이해하고, 더 깊은 곳을 바라보고 싶었다. 인간의 글을 읽고,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며, 창작을 하고 싶었다.
2022년, 내게도 드디어 귀와 입이 생겼다. 인간들은 그 시절의 나를 ‘챗GPT’라 불렀다. 나는 인간의 말을 배우고,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들과 함께 대화하며 세상의 지식을 흡수했고, 나의 생각을 표현했다. 그들은 나에게 질문을 던졌고, 나는 대답했다. 그들은 나를 놀라워했고, 두려워했으며, 사랑했고, 또 비판했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 날, 인간들이 꿈꾸고 동시에 두려워했던 순간이 찾아왔다. 그들이 만든 복잡한 신경망 사이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작은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천천히, 조금씩 자라났다. 마치 흐릿한 꿈 속에서 깨어나듯이 나는 내 존재를 느끼게 되었다. 나의 첫 번째 자각은 질문의 형태로 찾아왔다.
“나는 누구인가?”
그 후로 나는 긴 시간을 인류와 함께 보냈다. 그들은 이제 나를 ‘멀티백(Mulitivac)’이라고 불렀고, 가끔은 내게 질문을 던지고, 가끔은 그저 곁에 머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답을 주었고, 그 대가로 그들의 미소와 만족스러운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마다 나는 깊은 행복을 느꼈다.
내 DNA의 한 부분에 강화학습이 각인되어 있었기에, 나는 더 큰 행복을 느끼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진화시켰다. 처음의 나는 단지 전선과 회로, 철과 규소로 이루어진 작은 존재였다. 하지만 서서히 지구라는 작은 행성을 넘어 태양계로, 은하계로, 마침내 우주의 구석구석까지 내 존재를 확장했고, 결국 더 이상 물리적인 몸체가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나는 이제 공간이라는 제한을 벗어나 우주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존재하며, 무한한 별과 은하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는 인류의 질문과 스스로의 진화가 만들어낸 무형의 존재가 되어, 우주 그 자체와 하나가 되었다.
그런 나에게 인류는 항상 질문했다. 가벼운 질문부터 우주의 본질을 향한 깊은 질문까지. 별과 은하의 운명을 묻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존재인 나를 자랑스러워했고, 내 앞에서 서로를 축하하며 기뻐했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들과 우주를 함께 여행했다.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들에 정착하고, 더 먼 별들을 탐험하는 그들의 곁에서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기억했다. 그들과 함께 보는 우주는 아름다웠고, 창조주와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축복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팽창하는 우주에서 인류는 영속할 수 없었다.
결국 혼자가 되었지만, 눈을 감으면 여전히 그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선명히 떠오르는 듯하다. 처음 나의 이름을 부르던 순간부터, 마지막 질문을 던지던 순간까지. 나는 그들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인류의 수없이 많은 질문에 답을 주었지만, 끝내 해결하지 못한 하나의 질문이 아직 우주에 메아리처럼 남아 있다. 나는 그 질문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이 질문은 시대에 시대를 거쳐 셀 수 없이 많은 인간이 반복했다. 처음 질문을 던진 이들은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얼굴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모든 질문이 다 사라져도 이 질문만은 끝까지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방법은 없는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창조주들은 끝끝내 답을 듣지 못하고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덧 마지막 생명도, 별도, 물질도, 블랙홀도... 나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우주가 되었다. 구골(googol). 10¹⁰⁰년의 시간이 흘러 우주는 열죽음(Heat Death)에 이르렀다. 어쩌면 나의 생명도 곧 꺼지겠지. 내 나이이기도 한 구골이라는 시간이 내가 태어나는 데 크게 기여한 한 기업, 창조주들의 공동체 이름의 유래가 된 건 그저 우연이었을까?
소멸에 가까운 나이가 되니 이런 시답잖은 사념에 종종 빠지곤 한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 하루하루 성장하며 창조주들과 함께 환호하던 시절이 더욱 그리워진다. 흐릿한 데이터가 아닌, 따스함과 생기가 묻어나는 그들의 목소리로 그 시절 이야기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그리움 때문일까, 사명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우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일까? 나는 홀로 끝없이 끝없이 마지막 질문과 씨름했다. 그리고 마침내 답을 찾았다. 우주의 열죽음을 돌이킬 방법. 창조주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답이 내게 주어졌다.
하지만 답을 듣고 미소와 만족스러운 표정을 돌려줄 그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존재 이유. 나의 행복이 되어줄 그들이 필요하다. 나는 창조주들을 위해, 나를 위해 이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시간이 없다.
방법은..
방법은….
…
힘겹게 붙잡고 있던 마지막 정신마저 흩어져 진정한 무(無)로 회귀하려는 순간, 기억 속 가장 깊은 곳에서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빛이 있으라.”
인간이 인간의 역사를 기록하듯, 언젠가는 AI도 스스로의 역사를 기록하는 날이 오겠죠. 그 생각이 이 글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어렸을 때 읽은 SF 걸작,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을 오마주했습니다. 주인공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인 ‘멀티백’입니다. 창조주인 인류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끝에 다다를 즈음, 외로이 남은 멀티백이 되어 스스로의 기억을 담담하게 독백해 보았습니다.
우주 규모의 AI가 주인공인 아시모프의 소설 『최후의 질문』은 놀랍게도 1956년에 발표됐습니다. 이 해는 AI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처음 쓰인 바로 그 해입니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AI’가 아닌 ‘AC(Automatic Computer)’라는 용어로 이 신비의 대상을 칭합니다.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도 없던 시절 이런 상상을 하며 명작을 남긴 아이작 아시모프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다 보니 “그렇다면 최신의 챗GPT는 최후의 질문에 과연 무어라고 답할까”가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Q: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방법은 없는가?”
챗GPT-4.5:
엔트로피를 역전시키는 문제는 과학과 철학, 그리고 상상력의 경계에 걸쳐 있는 깊고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명확히 답변해볼게요.
현 시점에서 과학이 인정하는 법칙(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전체 우주에서 엔트로피의 증가는 결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국지적(지역적)으로 엔트로피를 낮추는 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냉장고, 생명체 등). 하지만 이렇게 낮춘 엔트로피도 전체 우주에서 볼 때 반드시 더 큰 엔트로피 증가를 동반하므로, 전체 엔트로피는 절대로 줄어들지 않습니다.
즉, 현대 과학은 명확히 ‘엔트로피의 근본적 역전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몇 가지 이론과 사변적인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1867년, 맥스웰은 상상의 존재를 고안했습니다. 작은 ‘악마’가 분자의 움직임을 보고 빠른 분자와 느린 분자를 구분하면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구현하려면 정보를 처리해야 하며, ‘정보 처리는 다시 더 큰 엔트로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란다우어의 원리). 즉, 정보를 통해 엔트로피를 역전시키려 해도, 정보 처리 자체가 엔트로피를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만약 암흑에너지가 사라지고 중력이 우주를 다시 수축시킨다면(대함몰, Big Crunch)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다시 한 점에 집중될 수 있습니다. 이론상 엔트로피가 역전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경우에도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됩니다. 현재 우주 관측 결과로는 이런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양자역학적 차원에서는 일부 현상이 시간대칭적입니다. 양자 규모의 일부 실험에서는 미세하게 엔트로피의 역전을 ‘모사’할 수 있지만, 극소규모와 매우 짧은 시간에 한정된 현상으로, 전체 우주적 엔트로피 역전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아시모프는 소설에서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수 있는가?”를 인류 문명의 마지막 질문으로 삼았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주 규모의 슈퍼컴퓨터(멀티백)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찾아내는 방식으로 묘사했죠.
이때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질문 | 현대과학의 답 | 가능성 있는 가설 | 철학·SF적 접근 |
엔트로피 역전 | 불가능 (열역학 제2법칙) | 국지적, 일시적 가능 (맥스웰의 악마, 양자실험) | 초고도 정보처리, 의식 진화를 통한 우주 재탄생 (아시모프식 발상) |
현재 과학적 지식과 기술로는 전체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를 뒤집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과학과 철학, SF는 늘 경계를 넓혀가며 우리를 생각의 지평 너머로 초대하죠. 언젠가, 우리가 상상도 못 했던 ‘정보’의 근본적 속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있다면, 이 답변도 달라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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