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애플리(I-appli)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 구멍가게 개발자가 보는 밑바닥 전망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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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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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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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리포터 1기 이아스
알고 보면 우연이 아닌게 없어 - 영화 "미인". 남자 주인공의 대사
한국은 요새 미친듯이 덥다고 하는데, 여기 일본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더워지고 있습니다.
i-애플리가 세상에서 빛을 본지도 어언 2개월 정도가 흘렀군요. 이제 일본의 휴대폰 사용자들은 이 단어를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것 아닐까요? 1700만 i-모드(I-mode)사용자가 i-애플리의 시장이라며 낙관론을 펼쳤던 것을 보았는데, 이제 조금 실소가 나오려고 합니다. 그 1700만명이 단말기를 바꾸어야 하는데 말이죠.
일본의 경기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건 세계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아는 사실은 아닙니다. "이것이 원래 일본의 경제이다"라고 말한다면 일본인들, 다소 불쌍해지지요. 하기야 샴페인이라도 실컷 들이켰으니 좋았던 때를 추억하며 살아가기도 할 만 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그 통에 안그래도 출중한 일본인의 검약정신은 바야흐로 극기의 경지에 이르렀나 봅니다.
이런 상황은 새로 나온 단말기에 대한 구매가능자들의 태도에서도 나타납니다. 사상 초유의 마케팅을 벌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텐데, i-애플리를 가능하게 하는 503기종은 그리 흔히 보이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킬러 애플리케이션의 부재
여기는 솔리드 스네이크. 본부, 응답하라! - 코나미의 게임 "메탈 기어". 솔리드의 첫 교신내용
좌사의 시가 낙양의 종이값을 올린다는 뜻의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란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i-애플리는 자체가 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알맹이가 필요하지요. 요새는 거창하게 이것을 "컨텐츠"라고 하지만,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종이가게 아저씨한테도, 좌사한테도요.
현재까지의 라인업을 살펴볼 때 "이거다"라고 할만한 것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하면 뭐 그런 거겠지만,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처음 나왔을 때의 기적적인 히트와는 아무래도 비교가 됩니다. 지난 도쿄 게임쇼에서도 보여진 i-애플리용 소프트웨어들은 정말이지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쓰레기"였습니다(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저 자신도 가슴이 아픕니다만). 이래가지고는 "이 게임을 하기 위해 503을 산다"는 인간은 나오지 않겠지요.
그럼 왜 i-모드 사용자들의 가슴을 싸하게 적셔주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없을까요?
10킬로바이트의 벽
1MB - 1 메가 비트 = 128킬로 바이트. 게임롬팩의 용량 단위
옛날 얘기를 잠깐 하자면, 80년대 중후반 8비트 컴퓨터계를 휩쓴 MSX라는 기종이 있었습니다. 이 PC는 요새 휴대용 게임기처럼 롬팩을 꼽아 게임을 할 수 있었는데, 초기 용량이 32킬로 바이트로 아주 작았습니다. 게임도 따라서 별로 복잡하지 않았지요. 그러던 것이 코나미라는 일본 게임회사에서 1메가 롬팩이라는 강한 임팩트의 용어를 쓰며 대용량 게임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많은 유소년들이 이 용량에 기겁했고, 스케일과 스토리라인에서 전무후무한 경험을 맛보게 되어, 90년대 가정용 게임기 시장 촉발에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했지요. 그런데, 이 1메가라는 것이 요새 말하는 1메가 바이트가 아닙니다. 즉 1024킬로 바이트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런 곳에서도 일본 메이커들의 네이밍 센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128킬로 바이트인데, 숫자도 그렇고 별로 감흥이 없지요. 그리해서 뻥튀기를 한 셈입니다. 지금은 다들 그 아이디어에 동의하며 만족하고 있지만요.하물며 10만원도 안되는 휴대용 게임기의 용량이 1메가는 기본이고 4메가 8메가, 요새는 32메가까지 나오며 총천연색과 음성까지 연출하고 있는 판에 20~30만원이 넘는 휴대폰 단말기에서 돌아가는 게임의 용량이 10킬로 바이트라는 건 거리를 뛰노는 어린이들도 납득이 안 갈 겁니다. 대강 수리적으로 말해 보통 휴대용 게임기의 게임 용량의 10분의 1, 솔직히 100분의 1을 가지고 만들라는 건데, 거의 "이래도 만들래?"라고 느끼는 것이 감추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렇다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이 왜 NTT-도코모에는 통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사실 그 이슈에 대해 공식적이며 저를 비롯한 삼척동자를 납득시킬 만한 뉴스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애들은 가라"는 약장수의 목소리가 웬지 귓가를 맴도는군요.
아무튼 죽으나 사나 10킬로바이트안에서 만인에게 감흥을 주는 뭔가를 만들어내기란, 차라리 낙향하여 조용히 삽질이나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민망함을 퍼부어줍니다. 총 10240글자로 만드는 자바 커피. 찻잔 속의 태풍은 정말 불 수 있는 걸까요?
느린 속도
꽉 잡아, 아주 빨라 - 유머. 거북이에 올라탄 달팽이가 뒤에 탄 달팽이한테.
4월초까지 현재 시판중인 i-애플리 가능 단말기는 총 5종입니다. 503이라는 숫자는 다 달고 있는데, 제조사의 이니셜을 앞에 달아서 후지츠는 F503, 파나소닉은 P503, NEC는 N503, 소니는 SO503,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코모는 D503입니다. 순서대로지만 F503과 P503은 용감하게도 503기종의 첫 테입을 끊기는 했는데, 그야말로 악명 높은 기종이 될 것 같다는 예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후발 기종인 N503, SO503이 나오기 전까지는 비교대상이 없어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벤치마크를 통해 성능 테스트를 해보니 양극화 그래프만이 결과 화면을 가득 메우고 말았습니다. 실로 극단적인 상황인데, 후발 메이커들을 칭찬해야 할 지, 프론티어들을 동정해야 할 지, 참 난감하군요. 특히나 이미 F, P기종을 구입하신 i-애플리 사용자 제위께는 삼가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i-애플리를 만드는 사람한테도 이런 결과는 무척 난감합니다. 이미 F와 P기종이 어느 정도 느리다는 것은 느꼈었는데, 이토록 차이가 난다면 오히려 어떤 기종군에 맞추어 작업해야 할 지 곤란하지요. 뭐 어차피 5기종별로 따로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속도는 프로그램의 핵심, 즉 코어와 관련되어 있어서, 그렇게 간단한 배치, 디플로이(deploy)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구기종을 버리고 신기종에 맞추어 하자니, 느려 터진 i-애플리에 좌절감을 맛 볼 용감하며 충성스런 열혈 i-모드 사용자들한테 일말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나요? 개발자도 사람입니다. 박애주의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개발자들은 이정도까지 윤리의식을 가지고 직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알아 주세요!)
구체적으로는 신기종들이 구기종들에 비해 그래픽 처리 속도가 월등합니다. 이는 즉 게임분야에서 아주 치명적인데, 애니메이션와 스프라이트 처리가 많은 비쥬얼 게임 장르들은 그동안 정말로 "조작감이 엉망이다"라는 핀잔을 억수로 들었는데, 그게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거죠. 그거 만든 사람들 요새 발 뻗고 잘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신기종들은 연산속도를 기반으로 한 순수 컴퓨팅 파워도 대단하므로, 어찌 되었건 간에 구기종들은 거북이 등에 탄 달팽이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소켓 통신의 부재
여인2:안녕하세요 - 영화 "접속"의 채팅 신.
"소켓"이라는 말은 다소 기술적인 용어일지 모르지만, 자바 네트워크 분야에 종사하는, 아니 자바 일반 과정을 이수한 분들이라면 한 번 쯤 들어봤을만 한 평이한 말입니다. 별로 새로울 것도, 놀랄 것도 없는데, 간단히 말해 비동기 상호통신 수단입니다. 채팅만 보아도, 한 명은 무조건 듣고 한 명은 무조건 말하는 동기적 방식이 아닙니다. 누가 언제 먼저 말할 지 모르고, 또 다들 서로 상대방의 말을 즉시즉시 받아 보아야 합니다.
이런 의사소통을 우리의 거룩하신 I-mode의 HTTP 프로토콜이 해주신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만, 기본적으로 HTTP는 네트워크의 부하를 최소로 하기 위한 요청-응답(Request-Response)방식으로 동기화 통신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핸드폰이 HTTP 프로토콜로 저 산 너머 어디엔가 있는 서버에게 뭔가를 요청하면, 서버는 그 요청에 응답하여 핸드폰에게 뭔가를 전달하겠지요.
문제는 이러한 간단명료한 방식이 여지것 일본 무선 인터넷의 패러다임을 운명지어왔다는 것입니다. 사정없는 인터렉티브니스(interactiveness)의 삭감은 "스타크래프트가 뭔데?"하며 18금 성인 PC게임을 즐기는 기현상 아닌 기현상의 진상입니다.
물론 현존 i-애플리에서도 네트워크 게임이라는 것은 있습니다. 오델로도 있고, 뭐 다른 것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것은 아주 순박한 것들이고, 소켓도 사실 그리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HTTP로도 적절히 흉내내며 커버할 수 있으니깐.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역시 "본격적"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아마도 NTT는 소켓통신의 허가로 인해 I-mode 서비스의 기본이 흔들린 것이 두려웠는지, 아니면 기존 인프라가 소켓통신과 같은 고부하(heavy load) 네트워크를 견딜 지에 자신이 없었는지, 별 코멘트 없이 i-애플리에서 HTTP통신만을 지원하는 참으로 원망스러운 네트워크 개발 환경을 던져주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이점은 J-Phone이나 au, 그리고 한국의 SK텔레콤과 같이 선(Sun Microsystems)의 MIDP를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 자바 서비스를 개시하려는 곳에서는 타산지석이 되었나봅니다. 이미 SK는 소켓 통신 가능을 분명히 했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J-Phone도 au도 I-mode의 전철을 밟고 싶진 않을겁니다. NTT만큼 상황이 좋지도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오늘 돌아가셨다. - "이방인", 카뮈
아주 딴 얘기 같지만, 어떤 보도를 보니 일본 TV 방송에서는 어떤 날에는 모든 채널 다 합쳐서 드라마에서만 300여명이 죽는(자연사도 사고사도 아닙니다. 순수히 살인으로) 진풍경이 연출된다고 합니다. 전 뭐 일이고 가사 활동이고 쫓겨서 TV를 그리 많이 시청할 형편은 아니지만, 역시 막 죽이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 게임 비평 잡지에서 본 만화에서 서술자이자 직업만화가는 지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의 초기모델 코드프리소동을 단지 "소동"이라는 이유만으로 즐거웠다고 하는데, 결국 당사자들은 죽거나 아니면 그만치 고통과 혼란을 겪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쁨이라고나 한다면 지나친가요?
평소에 많이 자제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하며 이해가 조금 가기도 합니다. 좀 황당한 발상이지만 i-애플리도 바로 그런 "소동"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NTT는 사실 i-애플리를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입니다. 곧 IMT2000도 있고, 모바일 자바가 아니더라도 할 것도, 해 줄 것도 많습니다. NTT가 썬(Sun)하고 무슨 자매 결연을 맺은 것도 아닌데, 지옥까지 같이 갈 일도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뒤따라오는 J-Phone이 안스럽게 까지 여겨지는군요.
소니의 베타 비디오 테입을 기억하십니까? 소니는 VHS라는 골리앗과 맞서 정말 멋진 전투를 벌였었는데, 안타깝게도 다윗이 어딘가 나사가 빠졌는지 뻗고 말았습니다. 저도 기억합니다. 그 귀엽고 화질 좋던 가정용 비디오 매체 말입니다. 소니는 그 뼈아픈 교훈을 통해 어떻게 월드 비즈니스를 해야하는지 깨달았고, 그래서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전대미문의 히트상품을 통해 소니를 워크맨 공장이 아니라 미디어 제국으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i-애플리, 과연 NTT의 베타 테입이 될 것인지, 이번 상대는 하지만 VHS도 아니고, 바로 자기자신, 거대하며 안이하고 조직과 그로 인해 경직된 사고방식입니다. 그리고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같은 중소개발사들의 몰락으로 "역사는 반복된다"는 토인비의 말을 또 한 번 증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악의 적은 자기 자신에 있다"는 한 게임의 오프닝 멘트가 기억납니다.
이아스님은 한빛 리포터 1기로 활동 중이며, 본인의 요청으로 필명을 사용하여 기사를 등록하였습니다. 이아스님은 현재 일본에서 자바 개발자로 활동 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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