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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라이프

종의기원, 22년의 시간은 데이터 숙성을 위해 필요했다(上)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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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1

|

by 한빛

19,571

『종의 기원』, 22년의 시간은 데이터 숙성을 위해 필요했다

“창의성의 원천은 재미를 가지고 노력하는 마음이다.” — 찰스 다윈

 

1861년 어느 날. 찰스 다윈은 집 옆에 있는 다운 하우스 모랫길을 산 책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산 지도 19년이나 되었다. 예전에 살던 런던 집은 매연과 안개가 많아서, 몸이 약한 그가 지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곳은 런던에 비해서 조용하고 공기도 좋았다. “여보, 사람이 찾아왔어요. 기자라는데 돌려보낼까요?” 사색 중이던 다윈은 아내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내가 가까이 와 있는 것도 모른 채 사색에 잠겨 있었다. 다윈은 나이가 들면서 고질병이 점점 심해졌다. 지금처럼 산책을 통해 안정을 취하는 방법이 치료에 도움이 되었다. “아! 괜찮아요. 서재로 안내해줘요. 바로 그리 가리다.” 아내는 알겠다는 손짓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기자가 왜 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아마 그 책 때문이겠지. 작년에 벌어진 논쟁이 아직도 식지 않고 있으니 말이야, 허허.‘ 다윈은 발길을 집으로 옮겼다. “안녕하세요. 다윈 박사님. 저희는 「헤럴지」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윌리엄 리처드고 이쪽은 제임스 던입니다. 이렇게 얼굴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자들은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기자님들. 이렇게 먼 곳까지 어쩐 일로 오셨나요?” 다윈은 기자와 악수를 한 뒤 의자를 권했다. “박사님이 저술하신 『종의 기원』에 대해 취재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다만, 저희는 책 내용보다는 그 책을 준비해 온 과정에 대해서 취재하고자 합니다. 출판사의 얘기로는 책이 출간되기까지 22년이나 걸렸다고 하던데요. 5년 동안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바로 이 책을 내신 게 아니라 22년이 지난 시점인 재작년에 책을 출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는 그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이렇게 취재를 나온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기자는 취재 목적에 대해 설명하고서는 다윈의 대답을 기다렸다. 

 

“기자 양반 이야기가 맞습니다.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22년이 흐른 뒤에야 이 책을 냈죠.” 다윈은 탁자 위에 놓인 자신의 책 『종의 기원』을 가리키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기자는 그런 박사의 모습을 보고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박사님. 저희는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알고 있습니다. 책 머리말에 ‘연구는 거의 끝나가지만 완성이 되려면 아직도 수년이 더 걸릴 것이다’라고 하셨죠. 22년의 시간도 모자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신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에는 여러 동식물에 대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나오는데,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희는 박사님께서 진행하셨던 자료 조사 과정과 내용 분류 그리고 연구 방법에 대한 기획 기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야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기자는 질문을 던지며,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다윈은 아내에게 차를 준비해 줄 것을 부탁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30년 전 겨울이었죠. 비글호는 폴리머스 항구를 출항하며 5년간의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바이아, 리오데자이로, 포클랜드 제도, 갈라파고스 제도, 코코스 제도, 희망봉을 거치며 항해를 했습니다. 비글호가 육지에 다다르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3개월씩 머물렀죠. 저는 그때마다 해당 지역에 어떤 동물과 식물이 있는지, 분포는 어떤지, 화석은 어떤 것이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다윈은 기자들이 메모하는 속도에 맞춰 말하는 속도를 조절했다. “그곳에서 구한 화석이나 식물 표본 중 일부는 집으로 보냈습니다. 나중에 연구를 할 때 사용하려고 한 것입니다. 저는 매일매일 그날 관찰한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어떤 동물이 있는지, 다른 곳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식물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고 유사한 식물은 무엇인지 1년, 2년 기록하다 보니 변화가 보였습니다. 

 

그 변화를 ‘변이’라고 불러야겠군요. 그게 더 맞는 표현이니까요. 아무튼 기록한 내용을 살펴보다가 변이에 대해 알게 됐고, 다음에 도착하는 곳에서는 그 변이에 대해서 주로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기록할 것이 많았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이전의 기록과 비교해서 차이를 기록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데이터가 쌓여갔습니다. 그렇게 기록된 데이터는 이론을 정립하고 실증을 하는 데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습니다.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다음 해에 『비글호의 항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군요. 그 책에는 항해와 관련된 내용을 넣었습니다. 거기에서 관찰과 기록에 대해 언급했죠. 그 이후 가져온 표본과 주변에서 구한 자료를 가지고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하자만 ‘진화론’에 대해서는 이미 잠정적인 이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윈은 잠시 말을 끊고 아내가 가져온 차를 마셨다. 

 

“이미 22년 전에 이론을 정립하셨던 거군요. 그런데 왜 그때 발표하지 않고 작년에 발표하신 건가요?” 다윈은 기자들의 질문을 들으며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성실해 보였고 자신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 기사를 내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윈은 찻잔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우리는 신을 믿습니다. 교회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창조론’으로 설명합니다. 『종의 기원』은 인간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진화론’의 일부라고 이야기합니다. 민감한 사안이죠. 결국 이 이론을 뒷받침할 과학적인 증명이 필요했습니다. 과학자로서의 권위도 필요했고요. 그래서 8년간 ‘따개비’를 연구해서 발표했습니다. 덕분에 저의 명성도 높아지고 과학자란 호칭도 받게 되었죠. 권위를 얻은 것입니다. 하지만 ‘진화론’을 증명하려면 더 많은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연구를 더 했고 자료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변이’는 자료를 많이 준비한다고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변이’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추적 조사하기에는 인간의 생은 짧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자연 상태에서 변이가 1년마다 한 번 나타난다고 해 보죠. 실험 대상이 50개라면 5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관찰이 쉬운 생물, 즉 변이의 과정이 짧은 생물을 택해 사육 재배를 했습니다. 바로 이 집에서 말이죠. 매일매일 관찰하고 기록하고, 다시 관찰하고 기록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자료가 이 책의 뼈대이자 논리가 되었습니다. 그런 준비 끝에 『종의 기원』을 출간한 것입니다. 기자님, 답이 되었나요?” 다윈은 설명을 마쳤다. 설명하는 내내 비글호 항해 시절과 집에서 연구 시절이 머리에 떠올랐다. “네. 박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책이 나오기까지 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 알겠습니다. 5년간의 비글호 항해는 ‘진화론’을 증명해 줄 데이터 수집과 관찰 그리고 기록의 시간이었던 거군요. 그 이후 시간은 ‘진화론’이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시간이었던 거고요. ‘진화론’을 위한 자료 수집이나 분석 모두 쉽지는 않았겠네요 저, 괜찮으시면 한가지 더 묻고 싶습니다.” 

 

기자는 수첩에 다윈의 얘기를 적고서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려 했다. “콜록, 콜록! 헉, 헉….” 그때였다. 다윈이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고질병으로 인한 기침과 구역질이 발작처럼 시작되자, 아내 엠마가 급히 달려와 남편의 기색을 살핀 후 기자들에게 말했다. “기자님. 오늘은 더 이상 안되겠습니다. 고질병 때문에 최근 남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요. 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세요.” 엠마는 부엌에서 물을 가져와 남편에게 마시게 하는 한편, 기자들을 다시 쳐다보았다. 기자들은 모자를 쓰며 가벼운 목례를 보이고 집을 나왔다. 다윈의 기침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만큼, 기자들의 발걸음도 함께 무거워졌다.

 

 

찰스 다윈과 『종의 기원』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했다. 그는 생물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는데 당시 종교 중심의 사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창조론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그는 20대 중반 비글호를 타고 탐험에 참여한다. 당시 선장인 로버트 피츠로(Robert FitzRoy, 1805년~1865년, 영국의 해군 군인)가 박물학자(博物學子, natural history, 식물과 동물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를 찾고 있었고 마침 다윈에게 연락이 닿았다. 1831년 12월, 들이닥친 한파에도 영국 정부의 비글호는 영국 플리머스 항을 출발했다. 

 

비글호는 길이 27미터, 무게 500톤짜리 중형 선박으로 선원 70명을 태우고 있었다. 비글호의 임무는 영국 해군의 남아메리카 해안선 지도 개량과 신형 시계 장비 검증이었다. 해안선 조사를 위해 파타고라스, 푸에고 삼, 칠레, 페루 등을 항해했다. 그러다 1835년 9월에 도착한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윈의 연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곳에는 파충류와 조류가 가득했다. 특히 다윈이 그곳에서 발견한 식물 185종 중 100종은 신종이었다. 즉, 갈라파고스 제도는 새로운 종種의 보고寶庫였던 셈이다. 그는 그곳에서 동식물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진화론에 대한 논리를 조금씩 만들어나갔다. 

 

다윈은 정박하는 곳에서 잡은 생물을 박제로 만들어 고향에 보냈다. 박제 기술은 남미 탐험 여행에서 만난 흑인 해방노예로부터 배워 둔 것이다. 그는 의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의대에 진학(1825년) 했지만, 곤충 채집과 동물 관찰에 더 흥미를 가지면서 의대를 포기했다.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신학과에 입학(2년 후인 1827년)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이 시기에 지질학, 자연 신학 등에 대해서도 배웠다. 비글호에 탑승하게 된 것도, 케임브리지 재학 시절의 은사인 존 스티븐스 헨슬로(John Stevens Henslow, 1796년~1861년, 영국의 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의 추천 덕분이었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하면서 집으로 편지를 보낼 때마다 견본을 동봉했다. 그가 이렇게 견본을 보낸 것은 지질학과 무척추 생물에 대해서는 잘 알았지만, 나머지 영역은 막 시작해서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후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라도 자료가 필요했다.

 

 그는 수집과 관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노트에 기입했다. 여기에는 플랑크톤으로부터 해양 생물에 이르는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의 해변과 내륙에 사는 거북이나 새들이 환경에 따라 약간씩 차이점을 보이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는 이후 영국으로 돌아와 헨슬로 교수와 함께 수많은 표본을 분류하고 항해 기록을 정리했다. 모든 것이 귀한 자료이고 데이터였다. 1839년 출판된 『비글호의 항해기』는 이러한 분류와 정리 작업의 결과 물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연구와 논문을 발표했다. 1837년에는 남미 대륙이 조금씩 융기한다는 내용의 지질학 논문을 발표했고, 같은 해 2월 지질학회 평의회 의원이 됐다. 1842년에는 『산호초의 분포와 구 조』, 같은 해 6월에는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이론’에 대한 초고를 적었다. 1844년에는 『화산도의 지질학적 관찰』을, 1846년에는 『남미의 지질학적 관찰』을 발표했다. 

 

이러한 논문의 배경에는 비글호 탐험에서 얻은 자료와 숱한 연구, 그리고 여러 언어에 능통한 부인의 도움이 있었다. 다윈은 그동안 모아둔 자료와 연구를 기반으로 1856년부터 『종의 기원』을 쓰기 시작했다. 1858년 알프레드 윌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년~1913년, 영국의 생물학자)에게 받은 미발표 논문이 자신의 이론과 너무나 닮아 있음을 알게 되면서, 다윈은 친구의 배려로 린네학회 총회에서 자신의 논물을 그의 논문과 함께 발표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859년 11월 『종의 기원에 대하여』를 출간하였고, 당시 종교적인 믿 음과 다른 내용으로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이 책은 총 14장으로 구성되었으며, 동식물의 생존과 종과 변종의 관계 등을 통해 그의 이론을 펼치고 있다. 책에는 파리, 코끼리, 말, 소, 곤충, 식물 등 다양한 종에 관한 번식 이야기가 나온다. 자손을 낳는 수는 많지만 다음 대代로 이어지는 수는 적다는 것을 밝히며 생존경쟁을 말한다. 이런 내용의 저변에는 데이터가 있었다. 다윈에게는 데이터가 그의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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