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로 살면서 호주 가이드북은 세 권 만들었다. 시리즈의 이름은 모두 달랐지만 제목은 늘 <호주>였다. ‘정통(이라 불리는)’ 가이드북의 타이틀은 지역명이기 마련이니 여행서 에디터에게 같은 제목의 다른 시리즈 책을 만드는 것이 그리 생소한 경험은 아닐 듯하다. 그중에서도 내게 <리얼 호주>가 좀 더 특별한 이유는 사적인 기억과 연관이 있다.
<리얼 호주> 배포용 신간 안내 자료에서 나는 저자를 두고 ‘호주 가이드북의 살아 있는 역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국내 작가가 집필한 호주 가이드북이 거의 없던 시절, <리얼 호주>의 저자는 자신의 첫 번째 호주 가이드북을 세상에 선보였다(당시 경쟁서는 ‘전 세계 여행자의 바이블’로 불리던 영문 가이드북과 그것의 번역판이었다). 이 시기 호주와 우리나라에 번갈아 머물던 나에게 이 책에서 소개한 곳을 찾아 다니는 것은 아주 소중한 일상이었다. 약 15년이 흐른 지금, 행복한 일상을 안내해 주던 그 콘텐츠와 저자를 <리얼 시리즈>에서 다시 만났다.
이 책은 지난 15년 동안 끊임없이 호주에 대해 연구하고 소개해온 저자의 노하우를 A부터 Z까지 모두 쏟아부은 결정체다. 새 옷을 입고 태어난 <리얼 호주>는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충실하고, 또 유연하고 세심하기로 작정했다. 새 옷을 입는다는 것은 더 나아지고 (또는 행복해지거나 즐거워지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리얼 호주>를 진행하며 직접 보았고 경험했다. 저자가 15년 동안 쌓아 왔던 내공을 <리얼 호주>에 오롯이 담아내는 이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에디터로서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초보 여행자였던 내가 의지했던 콘텐츠가 어느덧 변화하는 호주의 모습을 겹겹이 쌓은 채 묵직한 내공까지 품어냈다. 날카롭게 갈고닦은 콘텐츠로 핵심을 짚어 주는 내공은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증명해냈다.
시시각각 변하는 현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가이드북은 여행자가 즐겁고 행복해질 확률이 가장 높은 방향을 알려주는 제공자가 아닐까. 입장료가 오르고 버스 노선이 바뀌고 최종 교정지에서 잘 있던 음식점이 인쇄 전날 갑자기 사라져도, 여행하는 독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대안과 방향을 제시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종이 지도에 점을 찍으며 취재를 다니던 저자가 주소만 봐도 위치를 알 수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잃고 헤맸을지 상상하긴 어렵지만, 그 흔적과 고민은 이 책과 함께 떠난 길 위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Surfers Paradise, Gold Coast, Queensland,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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